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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한예진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9월 20일 전국 초·중··대학생 대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체험 수기’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앞으로 <미디어리터러시>를 통해 차례로 수상작을 소개할 예정이며 이번 호에서는 고등부 금상을 차지한 안산동산고 한예진 학생의 수기를 소개한다.



한예진(안산 동산고등학교 3학년)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단순히 열정적인 취재 모습이 적성과 맞을 것 같다는 이유로 기자가 되기를 꿈꾸던 나에게 미디어를 학문으로 공부하고 이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미디어가 보이다

고등학교 1학년 방과 후 사회 심화수업시간에 처음 해본 NIE 활동은 큰 충격이었다. 특히 메르스 사건에 대해 동일한 사진과 팩트를 가지고 두 개의 신문이 서로 다른 헤드라인의 보도를 하는 모습을 보며 학교 교과를 공부할 때와는 또 다른 흥미를 느꼈다. 이때부터 나는 더 다양한 사건들을 나만의 방법으로 분석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매일 아침 신문 스크랩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를 둘러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매일 새로운 기사들에 코멘트를 달며 생각을 정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저소득층에 대한 생리대 지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추적하면서는 어젠다 키핑의 중요성과 언론의 공익성을 느낄 수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등 기사에 자연스레 언급되나 평상시에 잘 몰랐던 단어들은 따로 찾아서 메모하는 방법으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NIE 수업을 들은 이후 꾸준히 해온 신문 스크랩


총선과 대선 때는 언론사별로 후보자에 대해 상반된 관점으로 쓰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여러 신문을 번갈아 읽으며 후보자의 다양한 면을 보기 위해 노력했고, 프레임을 걷어내고 인물 자체를 보고자 관련 책을 읽기도 했다. 언론의 편향성이 가장 극명하면서도 재미있게 드러나는 부분은 신문의 만평과 사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러 만평과 사설을 비교, 수집하여 급우들 앞에서 발표하며 각 언론사가 지닌 선명한 특징을 제시하기도 했다.

 

언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라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통한 장기 연구도 실시했다. 메르스 사태, 외국인 노동자 문제 등에 대해 상반된 기사를 바탕으로 교내 100여 명의 학생들에게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고 이를 분석하는 활동을 했다. 활동을 통해 수용자 대부분에게 낯선 사건의 경우 이를 접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창구인 언론이 수용자들에게, 특히 가치관이 단단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반면 잘 알려진 사건이거나 주위에 의해 이미 일정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난 뒤라면 언론 보도가 대중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며 오히려 기자의 의도에 반하는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비판적 이용자 되기

나의 고등학교 1학년은 비판적 이용자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주위에서 언론을 믿으면 안 된다거나 항상 비판적으로 기사를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적으로 와 닿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언론의 편향 보도 또는 언론의 침묵 등을 확인하고 나니 나는 어느새 비판적 이용자가 되어 있었다.

 

NIE 활동과 다양한 시사보도 비판, 분석 과정에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보도 내용을 넘어선 언론 시스템 자체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각 언론은 어떤 틀 안에서 사실을 진실로 재구성하는가, 어떤 부분이 삭제되고 어떤 부분이 강조됐는가, 이 보도사진을 선택한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자 언론과 언론인의 힘이 두렵게 느껴졌다. 뉴스 이용자인 한 나에게 있는 그대로오는 사건은 없었다.


시사 및 독서 토론 동아리 '동심' 활동 시간 마셀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읽고 발표하는 모습.


고등학교 2학년, 나의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됐다. 시사 및 독서 토론 동아리 독심의 부원으로 활동하며 동아리 선생님의 제안으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를 처음 만났다. 여태까지 읽어온 미디어 관련 도서와 수준부터가 달랐고 내용이 이해하기 어렵다보니 발표할 생각에 눈물이 났다. 하지만 반복해서 읽은 뒤 익숙한 촛불시위, 대학 입시 등을 예시로 들어 모든 것이 미디어이고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맥루한의 말을 나름의 방법으로 설명해냈다. 다행히도 동아리 부원들이 내용을 이해해주었고, 모든 것이 미디어라는 맥루한의 메시지는 토의를 통해 예술 등의 분야로 확장되기도 했다. 발표를 준비하며 맥루한의 말이 점점 마음으로 이해됐던 것 같다. “내용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미디어 자체에 초점을 맞춰라.” 처음에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했는데 결국은 언론인을 꿈꾸는 나에게 강렬한 깨달음이 됐다. 이 말은 내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하나의 미디어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즉 나는 하나의 독립된 미디어로서 내가 보도했다는 사실만으로 누군가에게 메시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의미가 되는 모든 것이 미디어라는 말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사는 우리가 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침몰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미디어가 던지는 의미들을 자각하고 경계하고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다음으로 <한겨레 21>은 내게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처음 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 뉴미디어 세대에게 기사를 읽는 것은 그다지 흥미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겨레 21>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기사 읽기가 정말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기반으로 쓰인 기사들은 첫 구절부터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며 나를 끌어당겼고, 마지막 부분에 도달할 즈음에는 단순한 흥미 유발 내용을 넘어선 심도 있는 내용까지 내 머릿속에 들어와 있었다.

 

공공 저널리즘을 경험하다

2학년은 여론 수렴을 제대로 체험할 수 있게 해 준 시기이기도 하다. 평소 청소년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41조를 이루어 전국 청소년 사회 참여 발표 대회와 교내 정책 제안 아이디어 대회에 참가했다. ‘교내 청소년 자유공간 조성 정책이라는 주제로 정책 제안 논문을 만들었는데 많은 활동 중 자유공간-공간에 공감해주세요캠페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부스를 설치하여 급식을 먹고 나오는 학생들에게 본인이 원하는 자유공간을 작성하도록 하고, 600여 명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유공간의 필요성과 원하는 자유공간의 모습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청소년들이 원하는 자유공간의 모습을 구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교내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공공 저널리즘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었다.


교내 정책 제안 아이디어 대회에 참가한 한예진 학생(왼쪽)의 모습, 한예진 학생은 이 활동을 통해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공공 저널리즘'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했다.


세계문제 심화수업을 들으며 세계언론자유지수에 대한 발표를 했는데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북유럽 언론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지수는 현저히 낮았고,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였다. 나는 국경 없는 기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언론자유지수를 평가하는 질문지를 번역해 한국 언론이 도대체 어떤 항목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권력과의 유착, 사전 검열, 취재원 보호를 위한 법률장치의 미흡 등이 언론 자유를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언론 자유를 위해 극복해나가야 할 장벽들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광고나 웹툰 등이 언론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들이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부상한 또 하나의 언론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언론이라고 생각했고 다양한 종류의 저널리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체험하기 위한 노력으로 광고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학교 안전에 대한 영상 광고, 지나친 학업 부담을 비판한 지면 광고 등을 만들며 다양한 메시지를 파격적으로 담을 수 있는 광고의 역할을 깨달았다. 이후 더 많은 광고를 접해보고 싶어 국립 한글박물관에서 특별전으로 열린 광고 언어의 힘전시회에 다녀오기도 했다. 신문 스크랩을 하며 사진이라는 미디어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인지하고 있었기에 보도사진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로이터 사진전이 열린다고 했을 때 큰 기대를 하고 방문했던 기억도 난다. 시위 현장을 찍은 사진, 전쟁 중의 희망을 보여주는 사진 등을 보며 인간을 보게 하는 미디어의 힘과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지는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느낄 수 있었다.

 

콘텐츠 생산자가 되어

필자가 친구들과 함께 만든 시사잡지 <짬뽕>의 표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핵심인 능동적 이용자가 되기 위해 직접 언론의 생산자가 되어보는 경험도 했다. 4명의 친구가 모여 시사잡지 <짬뽕(짬짬이 읽어 뽕뽑는 잡지)>을 제작했다. 각각 역할을 나눠 문학평론, 국제문제 기사 작성, 시사문제 기사 작성, 표지 디자인을 맡았고 다양한 분야를 담고 있는 시사잡지를 완성했다. 나는 시사문제 기사 작성을 맡아 당시 최대 화제였던 가짜 뉴스, GMO 표시제 등의 문제에 대해 내러티브 저널리즘 기법을 이용해 기사를 작성했다. 이용자들에게 다가가기 쉽고 흥미를 주지만, 심층적인 정보의 전달도 가능케 하는 기사를 작성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또한, 기자가 다양한 자료 중 의도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기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정보의 선택과 생략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았다. 생각보다 쉽게 자신의 의도대로 팩트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기도 했다.

 

선거철에는 특히 가짜 뉴스와 혼란스러운 여론조사 결과가 많이 떠돌아다녔다. 심지어 후보자들이 그러한 허위 정보를 직접 이용하며 서로를 견제하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우려됐고 후보자들의 정책을 직접 읽은 뒤 믿을 만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용해 대선 관련 기사를 작성했다. 수용자들에게 허위와 과장이 없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의 중요성을 느꼈다. 또 확실한 팩트를 담은 저널리즘을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가짜 뉴스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에 언론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들은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었을 때 그 이전과는 뉴스 이용의 자세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는 아직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전문적으로 활성화시킬 컨트롤 타워가 없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하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세계언론자유지수에 대해 연구할 때 소위 말하는 언론 선진국과의 자유지수 차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있었다. 생산자가 되어 언론을 만들어보는 것, 프레임에 맞춰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삭제할 수 있는가를 직접 느껴보는 것, 그곳에서부터 평범한 이용자는 비판적 이용자가 되기 시작된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해 뉴스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이용자들이 많아진다면 그것은 언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감시체제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미디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설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미디어 학과로 진로를 정하다

고교생활이 끝나가고 새로운 생활환경을 찾고 있는 지금, 나는 미디어 학과로 나의 다음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양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열정만 가지고 언론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언론의 파급력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기에 나는 이제 미디어에 대한 원론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나만의 보도 철학, 즉 기자의 말과 글이 가진 힘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건을 보도할 수 있는 기자정신을 만들어보려 한다. 또한, 색깔론으로 인한 경쟁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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